“뭘 벌써 자? 여긴 파티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라고!”

페리와 레베카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과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펍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뜨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이만 자러 가겠다는데 너무 빠른 시간이라며 더 놀자고 했다.


너희는 정말 괴물이야.'

오후 늦게 일어나 암스테르담 프리워킹투어에 갔지만 이미 정원이 차 버렸다. 대신 나처럼 갑자기 갈 곳을 잃은 금발 미녀니나를 알게 됐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니나는 암스테르담으로 6개월간 교환학생 온 친구다. 동유럽 여자들이 예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아마 유럽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서 제일 예뻤던 것 같다.

찌는 듯한 날씨와 거리에 터질 듯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 그 와중에 니나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계속 투덜댔다.

"어떻게 맥주 한 잔이 10유로나 하지? 슬로바키아에서는 1유로면 된단 말이야!"

‘네가 암스테르담에 와 버린 걸 어쩌라고….’

그런 니나에게 술은 암스테르담보다 싱가포르가 더 비싸다고 얘기했더니 'Hell'이 따로 없단다. 학생이니 주머니 사정이 어떨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계속 돈 이야기를 하는 니나에게 살짝 질렸다. 하지만 난생처음 만나는 슬로바키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도시를 걷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무엇보다 토요일 오후 보트에서 파티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혼자였다면 아마 남들이 파티하는 장면을 보고 괜스레 우울해졌을지도 몰랐다.


홍등가를 궁금해하던 니나에게 홍등가 투어에서 들었던 말을 해주며, 그 거리를 또 걸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출근한 분들도 많았다. 거리에서 그녀들과 협상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우연히 눈을 마주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킥킥거렸다. 내가 그랬듯 니나도 그들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확실히 같은 유럽이라도 국민성과 문화는 다른 가보다. 네덜란드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은 그녀에게도 처음 만나는 충격이었고, 니나가 느끼는 충격이 내겐 또 다른 재미였다.

이미 시작된 그들의 선상파티
암스테르담의 마헤레(MAREHE) 개폐교

“나 밤에 펍 크롤(Pub Crawl, 그 지역의 유명한 펍과 클럽을 돌아다니는 파티. 한여름 암스테르담에서는 매일 저녁 펍 크롤 파티가 열린다.)에 가볼까 싶은데…. 어때?”


니나의 눈이 반짝였다. 돈 때문에 1분 정도 고민하던 그녀는 같이 가겠단다! 브라보! 숙소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는데 페리가 나를 붙잡았다. 밤 12시에 파티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 니 말대로 여긴 파티의 도시니까!'


오케이! 펍 크롤에 갔다가 12시까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숙소를 떠났다. 펍 크롤에 입장하는 우리 손에는 촌스러운 펍 크롤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Youmay not remember tonight but won't forget!"(오늘 밤을 기억하지 못해도, 잊지는 못할 거야!)이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티셔츠에 쓰여 있었다. 단합대회도 아니고 다 같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건가?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 티셔츠를 입었고, 나도 티셔츠를 들고 다니기 귀찮다는 핑계로 입어 버렸다. 똑같은 옷을 입은 몇십 명의 사람들이 암스테르담 거리를 점령한 모습은 꼭 객기 부리는 고등학생들 같았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대마초를 판매했다는 불독 커피샵 (암스테르담의 커피샵은 대마초를 파는 곳)

각 펍마다 한 잔의 보드카는 무료지만 그 이후부터는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할로윈 파티도 아닌데 악마 복장을 한 무리들이 더러운 춤을 추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귀찮게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장소에서 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펍을 30분간 간격으로 투어 다녔다. 지루해질라 치면 다음 펍으로 옮겨가는 게 재미있었다. 오늘 나의 친구가 되어준 니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맥주 한 잔을 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맥주 한 잔씩 사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은데, 짧은 시간 동안 급하게 마셔버린 보드카와 맥주가 점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대마초 향도 점점 진해지는 느낌이었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면 안 되는데, 12시에 파티에 가기로 했는데…’

네덜란드의 전통신발 나막신 - 클롬펜

오랜만에 상쾌하게 눈을 떴다. 엇? 내가 어떻게 숙소에 왔지?

“야, 너 완전 제대로 놀더라? 니 친구가 너 여기데려다 줬었어. 너 좀 취해 보이던데.”

“아… 그랬구나…. 파티는 재미있었어?”

“아니 파티 취소됐었어.”

니나한테 고맙다는 말이나 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잘 놀아서 마음에 든다는 페리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오늘 밤에 꼭 파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오늘은 그의 눈을 피해 숙소에 들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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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습자지같은 스펙으로 싱가포르에 취업해 4년을 살았습니다. 해외취업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인스타그램 @star_swimmingstar

그렇게 더웠는데 어제저녁부터 쌀쌀해지더니 오늘 아침은 잔뜩 흐리다. 하지만 예정했던 대로 암스테르담의 근교로 떠나 본다.


1. 암스테르담의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하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작은 마을. 관광안내소도 있지만 문 열지 않았고, 작은 교회당에서는 100년은 된 듯한 책과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나 같은 외지인에게도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해 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내 무릎 높이보다도 더 낮은 담장을 가진 집에서 살고 있다.

이끼 낀 지붕, 참 좋다.


아이들이 야외수업을 나왔다. 선생님이 손을 절대 놓지 마라고 했는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다. 정말 앙증맞다. 하지만 선생님의 풀 설명보다는 내가 더 신기한지 전부 나를 쳐다봐서 괜히 선생님께 미안했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며 소와 양, 말을 매일 보고, 들판에 핀 꽃을 구분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는 것은 꽤 멋진 것 같다. 나도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가 어릴 때는 교외에서 키우고 싶다.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급기야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몸을 피해야겠다.


2. 한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나타났다. 얼마만에 보는 무지개인지 게다가 이런 배경으로 무지개를 볼 수 있다니 오늘 운이 참 좋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도시가 뽀송뽀송해졌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에담'이라는 도시. '에담'치즈로 유명한 치즈의 도시란다. 중심가에는 치즈 가게가 여럿 자리 잡고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Edam Cheese cake'이라는 단어의 나열을 보자 허기가 진다. 식당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아 치즈 케이크를 음미해 본다. 꽤 맛있다.

 "넌 어디서 왔니?"

 "한국이요."

 "당연히 남한이겠지?"

식당에서 맥주 한 잔 하시던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때가 북한이 도발을 일으켰던 때라 네덜란드 뉴스에도 연일 한국 소식이 많이 나왔는데 역시나 아저씨가 한국 괜찮냐며 내게 물어보신다. 그러다 말 거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는데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왔나 보다.

 "한국은 어쩌다가 분단이 됐니?"

 "그전에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해방이 되면서 남쪽이랑 북쪽에 따로... 어쩌고 저쩌고.."

 "아 그렇구나. 근데 왜 일본은 한국을 왜 식민지로 삼았니?"

 "일본은 섬나라인데 한국이 제일 가깝고... 어쩌고 저쩌고."

내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지를 들어 올리며 고맙단다. 한국인을 태어나서 처음 만난 거라고 한다. 내가 알크마르에 치즈시장 보러 갔었다고 하니 치즈를 보려면 에담을 먼저 왔어야 했다며 내게 살짝 핀잔을 준다. 

다시 시작된 나 혼자 에담 투어. 아까 들렀던 작은 마을보다는 훨씬 큰 마을. 작지만 나름 광장도 있고,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적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의 아무 마을로 이동해 본다.


3. 해 질 무렵 도착한 마을. 역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예쁜 교회와 예쁜 가게들. 그리고 그곳까지 나를 따라온 것 같은 무지개로 완벽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곳.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당이 있는 집들을 많이 본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절대 볼 수 없던 마당이 딸린 집을.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넘어왔다. 해가 지고 밤이 시작되었는데 암스테르담에 오니 네온사인으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다. 오늘이 레베카의 생일이니 한 잔 하러 가자고 한다. 두 시간 정도 놀다가 그것도 재미가 없는지 피곤한지 그만 쉬고 싶어 져서 일찍 잠에 들었다.  아마 낮에 느낀 감성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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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알아? 우리 네덜란드인들은 10대 때 딱 2가지만 배워."


 "그게 뭔데?"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

  "내가 과장 좀 했는데, 어릴 때부터 우린 항상 질문을 받아. '뭐 먹고 싶니?', '어디 갈래?', '뭐하고 싶니?' 같은 간단한 질문부터 정치, 경제에 대한 생각까지. 그러다 보니 내가 평소에 생각이 없으면 아무 대답도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버릇 덕분에 국민들 각자가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고 있어. 난 우리나라 교육 좀 괜찮은 거 같아."


What do you want to do? What do you want to eat?"


게스트하우스에서 근무하며 새벽에는 그래피티를 그리러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 페리. 그는단 두 문장으로 네덜란드인이 받는 교육을 간결하게 압축시켜 버렸다. 공교육만으로 대부분의 국민이 2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부럽지만, 그보다는 각자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말이 참 근사하다. 매춘과 대마초가 합법이 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교육 때문이 아닐까? 


"그럼 그래피티가 합법이야?"

"당연히 불법이지. 그래서 경찰 뜨면 도망가야 돼!" 


새벽에 돌아다녀서 그런지 대마초 때문인지 항상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는 그 아이는 꼭 『해리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프 교수처럼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피티를 이야기하는 순간은 눈이 반짝거린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전 세계 여행객들과 이야기하고, 그래피티를 그리는 삶이 좋단다.

나한테는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야.

로비에 새로 들어오는 여자에게 페리가 인사를 했다. 그녀는 술잔을 들고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레베카는 까다로워 보이는 첫인상과 다르게 굉장히 붙임성 있었다. 바에서 계속 맥주를 들이키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본인의 스케치북. 그걸 보여주며 한 장 한 장 본인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게다가 그 스케치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대로 팔에 문신까지 해 버렸다. 그녀는 미술 전공을 하고 있으며 일주일 동안 암스테르담에 휴가를 왔다. 레베카에겐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였다. 실제로 오후에는 암스테르담의 조용한 카페나 운하 근처에 앉아 몇 시간이고 계속 그림을 그리고 밤새도록 파티에서 놀다가 해 뜰 때쯤 돌아와서 잤다. 그리고 오후에 일어나 그림 그리는 일상. 그것을 일주일 내내 암스테르담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영감을 주는 고흐의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를 보고 내가 지금까지 간 ‘휴가’라는 것들을 돌이켜 보았다. 블로그에서 봤던 “XX에서 꼭 해야 할 것”대로 걷고 음식을 먹은 게 아닐까? 대체 휴가를 간 건 나인가, 블로그 주인인가? 인증샷을 찍고 발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휴가가 아닐까?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커피숍(네덜란드의 커피숍은 대마초를 파는 곳이다)
 "너희는 11개월 일하고 1개월 휴가 가지? 나는 11개월 여행하고 1개월 일해." 

 "비용은 어떻게 충당해요?"

 "11개월 동안 내 수만 마리의 일꾼(꿀벌)들과 퀸(여왕벌)이 날 위해서 열심히 일해 놓으면 내가 남아공에 돌아가서 1개월 동안 일을 하지. 그리고 그 돈으로 다음 11개월 동안 다시 여행 다녀. 큰 돈은 아니라 고급스럽게 여행은 못해도 배낭여행은 충분히 할 수 있지."


6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30년간 여행 중인 산타클로스의 수염을 가진 에드워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배낭에서 식빵과 잼을 꺼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예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이 주로 오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을 숙소로 삼은 것도 그랬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정말 여행을 좋아했고, 가지고 있는 돈 안에서 그걸 하고 있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네덜란드 방문이라는 할아버지에겐 여행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삶의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게 아닌 삶 자체였다. 


나 역시도 살아있는 동안 되도록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여행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볼 때마다 놀랍다. 사실 인간은 유목민이었는데 언제부턴가(아마도 벼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정착했다. 사람들이 언제나 여행을 꿈꾸고 버킷리스트에 세계일주를 넣는 이유는 우리 피 속에 아직 남아 있을 유목민의 DNA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보고자 떠난 여행에서 가끔은 그곳의 풍경보다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정말 ‘지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창한 삶의 철학이랄 것도 없다. 그저 남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걸 하며 살아간다.


 “3개 국어를 하면 이런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고급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면 안 되나? 그리고 그래피티 말고 돈 되는 그림을 그리면 안 될까?

 “네덜란드까지 와서 풍차 안 보고 뭐하냐?”

 “양봉사업이 잘 되면 몇 달 더 일해서 그걸 확장시키면 돈을 더 많이 벌 텐데.”


지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상반되는 두 감정. 사회가 만들어놓은 길대로 가는 것에 익숙한 나는 그들에게 값싼 걱정을 보내지만, 가슴 한편은 씁쓸하다. 사실 그런 자유와 당당함이 부럽다. 시키는 것을 최고로 잘 해내는 나는 결정하라고 하면 그때부터 바보가 된다. 내 취향마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 배운 잣대로 그 삶을 멋대로 평가한다.


남들이 만든 길 따라 사는 것이 최고라 해서 그렇게 살았는데, 난 ‘생각 불능 상태’가 되었고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저렇게 지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저러다 돈 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거 하면 돈 벌 수 있어? 그거 하면 스펙 생겨? 인맥 생겨? 우리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기준은 내게 행복은 커녕 만성적인 욕구불만만 주었다. 항상 불안했다. 어쩌면 진짜 저 아이들처럼 지 맘대로 사는 게 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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